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장수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 또한 마음 무거운 숙제임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내가 본 슬기로운 효도 풍경을 몇 개 소개합니다.
A는 눈도 귀도 어둡고 매사에 어눌한데 고집은 센 노인입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니 항상 외톨이. 그런데 딸이 수시로 찾아와 어머니 팔짱을 끼고 전관을 누빕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준비해온 선물을 하나씩 건넵니다. 재래시장에서 사온 소포장의 떡·약과·견과류 따위. 그 솔직한 효심과 소박한 선물을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서 입주자들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꽉 잡아 놓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합니다. 그러고 보니 함께 어울리지는 않을지언정 오며 가며 눈길 한 번이라도 더 주고, 식당에서는 물을 떠다 드리게 되는 그 노인. ‘죽고 싶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녀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잘 버텨냅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B. 그는 불만이라고는 없어 보입니다. 가까운 친구도 몇 사람 있는 듯, 함께 구내 매점과 커피숍에도 자주 가는 듯했습니다. 누군가가 귀띔해주기를, 그의 자녀가 매점과 커피숍에 일정 금액을 맡겨 놓고 그 돈이 다 소진되면 다시 또 메워준다는 거예요. 남들은 돈을 쓸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 일정 포인트에 도달하면 한 번의 공짜 서비스를 받기 위해 포인트를 쌓아 가는데, B 노인은 맡겨둔 포인트를 하나씩 빼 먹는다는 거죠. 가끔씩은 친구들 몫까지 한턱 쏘는 여유를 보입니다.
가게에서는 선금으로 매상을 올려주니 VIP 고객 아니겠어요? 누군가의 말이, 그래서 B는 어깨에 ‘뽕’을 넣고 다닌다는 거예요. 노인에게 날개는 어울리지 않는데 어깨에 뽕을 넣고 다닌다는 표현은 정말 적절했습니다. 노인들은 또 말합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넣어준 돈을 함부로야 쓰겠냐고요.”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